실감 대신 상상력: 스크린 너머 예술 감상의 조건
예술 감상, ‘손에 잡히는 것’에서 ‘스크린 속 체험’으로
예술을 감상한다는 행위는 예전에는 꽤나 물리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림 앞에 서서 실제 붓 터치를 바라보고, 조각의 질감을 손끝으로 상상하며, 콘서트장이나 극장의 울림 속에 몸을 맡기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어떠신가요?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다 우연히 마주친 디지털 아트, 인스타그램 속 짧은 영상 퍼포먼스, 혹은 VR 전시회. 더 이상 작품 앞에 ‘있는 것’이 감상의 전제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감상자는 전시장을 방문하기보다는 앱을 설치하고, 작품을 클릭하며, 피드백을 댓글로 남기고, 때로는 작품 자체를 공유하기도 하지요. 이런 흐름 속에서 예술 감상의 방식은 단순히 기술적 진화를 넘어서, 감상자 자신의 태도까지도 조용히 변화시키고 있는 듯합니다. 직접 보고 듣는 감각 중심의 감상에서, 상호작용하고 재해석하는 ‘참여형 감상’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작품을 ‘소비’하는 시대, 예술은 여전히 느림을 허락할 수 있을까
디지털 시대의 감상은 속도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이미지, 영상, 사운드를 스크롤하는 우리는, 작품 앞에 멈춰 서 있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예전 같으면 하나의 작품을 앞에 두고 몇 분, 길게는 십수 분을 고요하게 감상했겠지만, 지금은 3초 안에 ‘좋아요’를 누를지 말지를 결정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마치 패스트푸드를 고르듯, 작품 역시 빠르게 소비되고, 빠르게 잊혀지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예술 감상자에게 요구되는 태도는 무엇일까요? 오히려 더 의식적인 ‘멈춤’ 아닐까요? 스크린 속에 갇힌 예술 앞에서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 이미지 한 장 안에 숨겨진 색의 온도와 작가의 맥박을 읽어내는 느림의 용기 말입니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예술 감상은 더욱더 ‘의지적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역설이 생기는 지점이지요.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예술, 내 취향은 어디에 있나요?
SNS나 스트리밍 플랫폼을 사용하다 보면, 이제는 내가 찾지 않아도 알아서 콘텐츠가 추천됩니다. 예술도 예외는 아니지요. 내가 자주 보는 화풍, 선호하는 음악 장르, 클릭했던 전시회 정보에 따라 점점 더 ‘맞춤형’ 예술이 도착합니다. 처음엔 편리하다고 느껴졌던 이 기능이, 어느 순간 ‘나만의 취향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버리지는 않았을까요? 감상의 폭은 넓어졌지만, 동시에 선택지는 좁아지고 있다는 딜레마. 디지털 시대의 감상자는 이제 더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알고리즘의 선택에서 벗어나려는 능동적인 의식이 필요합니다. 내가 원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줘서 보는 것이라면 그것은 감상이 아니라 소비에 더 가깝습니다. 예술 앞에 ‘선택’이라는 행위를 되찾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 감상자의 숙제가 아닐까요?
디지털 속 가상 전시, 실재감을 대신할 수 있을까
팬데믹 이후로 가상 전시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집에서 명화를 감상하고, 클릭 한 번으로 유명 미술관의 내부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은 과연 예술의 진짜 감동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르네상스 회화 속 인물의 눈빛, 현대 설치미술에서 풍기는 공간의 기압, 무대의 긴장감을 머금은 배우의 숨결 같은 것은 여전히 화면 밖의 것들입니다. 물론 디지털 기술이 전달해주는 정보는 풍부하고, 확장성이 뛰어나며, 접근성을 넓혀줍니다. 하지만 예술 감상의 본질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감정의 깊이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실재의 공기를 마시며 작품을 마주할 수 없다면, 그만큼 감상자는 상상력과 집중력을 더 많이 써야만 합니다. 눈앞에 없는 것을 그려보고, 화면 너머의 온도를 느끼려는 태도야말로 디지털 시대 감상의 또 다른 미덕입니다.
작가와 감상자 사이,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예전에는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고, 감상자는 그것을 조용히 바라보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 경계가 흐려집니다. NFT 아트처럼 감상자가 구매자이자 큐레이터가 되기도 하고, 유튜브 영상의 댓글창에서는 감상자가 해석을 제안하거나 작품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공유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감상자의 행동 자체가 예술의 연장이 되기도 하지요. 디지털 퍼포먼스에서 감상자의 클릭이 다음 장면을 결정짓거나, 온라인 전시에서 관람객의 피드백이 작품의 일부로 저장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감상은 더 이상 일방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참여와 재구성, 소통이 함께하는 새로운 ‘예술 감상의 패러다임’ 속에서 우리는 어느덧 ‘관람자’가 아니라 ‘공동 창작자’로서의 위치에 서게 된 셈입니다. 예술은 이제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술 감상, 결국 태도의 문제입니다
디지털 시대가 아무리 변화하더라도, 예술을 마주하는 ‘태도’만큼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 감상이라는 본질적 행위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습니다. 빠르게 넘기지 않고, 스쳐가지 않고, 잠시 멈춰서 바라보는 것. 그것이 디지털 속 예술을 진짜로 느끼는 첫걸음입니다. 바쁘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예술은 오히려 더 단단한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쉼표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 태도만이, 디지털 시대에도 진짜 감상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