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의 대화, 이해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예술은 이해와 공감을 잇는 다리

예술을 감상할 때, 우리 마음에는 언제나 기대와 호기심이 스며듭니다. 그림 한 점, 음악 한 곡, 무대 위의 춤사위… 그 모든 것은 우리와의 대화를 시작하려고 손짓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종종 “이해 못 해도 괜찮다”라는 말이 들려오곤 합니다. 예술은 원래 난해할 수 있고, 모든 의미를 알지 않아도 즐길 수 있다는 위로의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만 흘려보내도 괜찮을까요? 예술의 본질이 ‘소통’이라면, 이해를 포기하는 순간, 예술이 열어주려던 문도 닫혀버릴지 모릅니다. 예술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의 시선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벽을 그냥 둔 채 “나는 모르는 게 당연해”라고 안주해버리면, 더 큰 세계를 마주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셈이 될 수 있습니다.

‘이해할 필요 없어’라는 말의 달콤함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접할 때마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교차합니다. 현대미술 전시회를 가면, 괴상하게 보이는 설치미술 작품들 앞에서 “이게 뭐야?”라는 물음이 절로 나옵니다. 바로 그때, “이해 못 해도 좋아요”라는 말은 마치 따뜻한 담요처럼 마음을 덮어줍니다. 사실, 이 말이 위로가 될 때도 있지요. 하지만 그 위로가 길어지면 어떨까요? ‘이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제는, 결국 예술을 멀리하게 만드는 편리한 핑계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마치 길을 잃고도 “어차피 길은 없으니 그냥 돌아다니자”라고 체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작품이 던진 질문과 대화를 거부하게 되고, 예술이 품은 풍성한 세계로의 초대장을 무시해버리는 꼴이 됩니다.

이해를 포기하면 잃게 되는 것들

예술은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세계를 열어줍니다. 물론 모든 예술을 똑같이 깊이 파고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해’라는 것은 작품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관객이 예술에 참여하는 첫걸음입니다. 작품이 담고 있는 시대적 맥락, 작가의 의도, 그 안에 숨어 있는 상징을 조금씩이라도 풀어내려 할 때, 비로소 작품은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서는 ‘이야기’로 변합니다. 이해를 포기하면, 작품은 그저 벽에 걸린 장식품이나 배경음악으로만 머무를 뿐입니다. 마치 언어를 모르는 나라에서 노랫말도 모르고 흘려듣는 음악처럼, 그저 배경음으로만 스쳐 지나가고 맙니다. 예술의 진정한 묘미는, 결국 ‘의미를 찾으려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해’를 향한 작은 노력의 가치

이해는 절대적으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뭘 느꼈지?” 하고 자문해보는 순간입니다. 그것이 곧 예술과 나만의 인연을 맺는 출발점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작품을 둘러싼 글을 찾아보거나,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다 보면 “아, 이런 뜻도 있구나” 하고 새로운 문을 여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이때 비로소, 작품과 나 사이에 짙은 공감의 선이 하나씩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해’는 부담스러운 과제가 아니라, 오히려 예술을 진짜로 느끼게 해주는 열쇠가 아닐까요?

예술을 두려워 말고, 마음 열어보세요

예술을 앞에 두고 “이해 못 해도 좋아요”라는 말에 너무 기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물론 모를 수도 있고, 작가의 의도가 너무 추상적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이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마음만은 꼭 가져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것이 예술을 향한 예의이고, 동시에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술이라는 숲에서 길을 잃어도 좋습니다. 다만, 그 숲이 열어주는 무수한 길들 중 하나만이라도, 기꺼이 발을 디디며 탐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언젠가,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 아니라, ‘이해할수록 더 좋아지는’ 예술의 세계가 손짓하는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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