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감상자의 만남, 그리고 비평

예술을 감상할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비평 없는 예술이 정말 가능할까요?’ 이 질문은 마치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숨을 쉴 수 있냐는 질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비평은 예술의 그림자처럼 언제나 그 곁에 따라붙습니다.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부터, 혹은 심지어 창작자 머릿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이미 비평이라는 눈길은 살금살금 그 뒤를 쫓고 있는 듯합니다. 비평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예술을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처럼 보이는 걸까요? 그리고 정말로, 비평이 전혀 없는 예술을 만들거나 감상할 수는 없을까요?

먼저, 예술은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소통을 염두에 둔 창조물입니다. 아무리 혼자만의 작업이라고 해도, 그것을 완성하는 순간에는 누군가가 보고 느끼길 바라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누군가 본다는 건, 필연적으로 그들의 시선과 평가를 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림 한 점을 걸어두면 누군가는 색감이 좋다거나 구도가 아쉽다거나,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작품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토론을 벌입니다. 이렇게 비평은 마치 예술의 씨앗을 품고 태어나는 쌍둥이처럼, 작품과 함께 세상에 등장하는 듯합니다. 어쩌면 예술이라는 꽃이 피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평이라는 뿌리가 있어야만 하는 걸까요?

또한, 비평 없는 예술이란 결국 ‘침묵’과도 같습니다.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감정이 일지 않는다면, 그것이 예술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떤 작품을 보며 한마디라도 하고 싶어지는 것은, 예술이 우리 마음을 건드렸다는 증거입니다. 예술이 말을 걸어오는데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존재를 무시하는 처사 아닐까요? 예술이란 결국 서로의 목소리를 이어주는 다리이고, 비평은 그 다리를 건너는 작은 발자국들 같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비평이 지나치게 무겁게 작품 위에 내려앉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비평이 예술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예술가의 자유를 옥죄기도 하지요. 이를테면, 한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 온갖 ‘평가의 잣대’가 들이밀어질 때가 있습니다. 색깔이 이래서 안 되고, 주제가 저래서 별로라는 식의 비평은 오히려 예술의 숨을 막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예술가들은 ‘비평 없는 예술’을 꿈꾸기도 합니다. 온전히 창작자와 작품,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직관만으로 이루어지는 순수한 만남을 원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정말로 비평 없는 예술은 가능할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완벽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은 예술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저 살아 있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니까요. 작품을 보며 무언가를 느꼈다는 건 이미 ‘비평’의 시작입니다. 굳이 어려운 말을 붙이지 않아도, ‘좋다’, ‘별로다’라고 속삭이는 순간부터 우리는 비평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예술은 그렇게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이끌어내며,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만나며 자라납니다.

결국 비평 없는 예술이란, 예술을 향해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그 자체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리고 비평은 그 소통의 언어이지요. 누군가는 날카로운 비평으로 예술의 숨겨진 면을 드러내고, 또 누군가는 부드러운 감상으로 그 가치를 나누어 줍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술의 일부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 비평 없는 예술은 마치 향기 없는 꽃과 같습니다. 꽃은 스스로 피어나도, 그 향기를 맡고 감탄해 주는 이가 있기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완성됩니다.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는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그 빛을 비춰보는 이들의 마음이 모여야, 예술은 온전한 형태로 피어납니다. 그래서 비평 없는 예술이란 존재할 수 없고, 또 존재해서도 안 되는 이유가 아닐까요? 예술은 질문이고, 비평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화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만나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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