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예술의 화려한 포장 뒤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
K-예술, 그 화려한 포장 아래 숨겨진 복잡함
요즘 ‘K-예술’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옵니다. K-팝, K-드라마처럼 ‘K-’라는 접두어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브랜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하지만 정작 ‘K-예술’이라는 말을 들으면, 묘하게 불편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본래 각자의 개성과 감각, 그 안에 담긴 서사와 실험정신이 중요한데, ‘K-예술’이라는 말은 마치 우리 예술의 본질을 표준화된 상자에 담아 버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어쩌면 ‘예술의 한류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상업적이고도 일률적인 프레임에 갇히는 것 같아서, 그 화려한 포장 아래 숨겨진 복잡한 속내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집니다.
예술이 K-문화라는 껍데기에 갇힐 때
‘K-예술’이라는 말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술을 ‘K-문화’라는 국가 브랜드 속으로 집어넣어버린다는 점입니다. K-팝이나 K-드라마처럼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는 ‘K-’가 일종의 품질보증서처럼 통합니다. 하지만 예술은 대중문화만큼 명확하게 상업적 성공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각자의 예술가가 자신만의 언어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풀어내는 것, 그것이 예술의 본질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K-예술’이라는 이름은 그 자유로운 실험을 ‘우리나라의 자부심’이란 틀로 포장해버리고, 자칫하면 창작의 본질을 흐려버릴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이 단순히 ‘K-’라는 이름값으로 소비될 때,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땀과 고뇌, 그리고 예술가의 내밀한 고백들이 희미해져버릴까봐 우려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것’이라는 집단적 정체성과의 충돌
또 하나 불편한 지점은 ‘K-예술’이라는 말이 암시하는 집단적 정체성입니다. 물론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예술은 늘 ‘나’에서 시작됩니다. 한 개인의 시선, 한 사람의 목소리로부터 피어나는 것이 예술의 힘이니까요. 그런데 ‘K-예술’은 그 개인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묶어버리고, 마치 국위선양의 일환처럼 취급하기도 합니다. 예술은 그저 예술일 뿐인데, 여기에 ‘K-’라는 집단적 깃발이 붙는 순간, 개인의 이야기는 어느새 ‘국가의 브랜드’가 되어버립니다. 이게 무슨 문제냐고요? 예술은 본디 그 사회나 국가가 정해놓은 정체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자, 새로운 시선의 탐험입니다. 그런데 ‘K-예술’이라는 말은 그 몸부림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어버리기에, 결국 개인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무언의 권력이 되기도 합니다.
예술의 독립성과 ‘브랜드’ 사이의 불협화음
우리가 ‘K-예술’이라는 말에 주목할 때, 그 말이 자연스럽게 ‘브랜드’처럼 기능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예술계의 여러 지원 정책이나 국제 전시를 보면, ‘K-예술’이라는 간판을 앞세워 한국 작가를 해외에 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국가 차원의 지원이 예술가에게 큰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술이 점점 더 ‘브랜드’처럼 다뤄지고, 작품의 가치가 시장의 기대치와 국가의 홍보 전략에 맞춰 재단되곤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일이지 않을까요? 원래 예술은 시장의 질서나 국가의 전략을 거스르기도 하고, 때로는 도발적이거나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예술의 존재 이유입니다. ‘K-예술’이라는 이름이 예술의 자유를 억제하거나, 그 의미를 오염시키는 순간, 우리는 예술의 숨결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계속 고민해야 하는 이유
이렇듯 ‘K-예술’이라는 말에는 분명히 불편한 기운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불편함조차 우리에게 예술의 의미를 더 깊이 묻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불편함은 언제나 새로운 사유의 시작점이 되니까요. ‘K-예술’이라는 말이 던져주는 이질감은, 결국 예술이 단순히 국가의 자랑이 아니라, 한 개인의 자유롭고도 솔직한 목소리로 피어나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불편함을 외면하기보다는, 오히려 붙들고 씨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만 예술이 ‘K-’라는 이름값에 갇히지 않고, 여전히 우리를 흔드는 무한한 울림으로 남을 수 있을 테니까요.